국내 증시 동향 분석
1단계 금융장세
일단 제대로 금융장세에 돌입하게 되면 반등의 강도는 시장의 예상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반등이 강하게 나오는 이유는 비관론자들의 항복 때문이다. 왜 지금 주식을 사면 위험한지 이유를 100가지도 더 들 수 있는 시기가 바로 금융장세다. 이렇게 부정적 인식이 크게 퍼져 있을 때에는 투자자들이 현금을 보유하려 한다. 더 나아가서는 공매도나 인버스 투자와 같이 하락 베팅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씩 회복하고 증시도 상승세를 보이면서 하락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하나둘 항복을 한다.
금융장세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금융장세는 불경기 속에서 나타난다. 경기가 좋지 않으니 중앙은행은 금융시장 환경을 완화하려고 노력한다. 대표적으로 금리를 내리는 방법이 있다. 금리가 내려가면 주식 입장에서는 할인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인 매력이 증가한다. 가계와 기업 모두 대출 금리가 하락하므로 유동성 환경이 개선된다.
금리를 내리는 것 이외에도 추가로 고려할 점이 두 가지 더 있다. 바로 포워드 가이던스와 대차대조표 조절 정책이다. 연준이 실제로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지 않더라도 오직 소통을 통해 미리 시중 금리가 실제로 정책 금리를 바꾼 것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포워드 가이던스다. 대차대조표 조절 정책이란 양적완화, 양적긴축과 같이 연준이 자산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것을 말하는데, 금융위기 이후에 도입되었다. 다만 자산 총액에는 변화가 없으나 장기물은 매수하고, 단기물은 매도하여 장기 금리를 낮추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라는 정책의 경우엔 금융위기 당시뿐만 아니라 1960년대 초반에도 사용된 바 있다. 양적완화, 양적긴축,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통틀어서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라고 한다. 이들 정책도 유동성 환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과거처럼 단순히 기준 금리를 올리고 내렸을 때에 비해 장세를 파악하기 힘들어진 측면이 있다.
테크니컬 지표로 보았을 때에는 거래량이 주가에 선행해서 늘어난다. 지난 2000년 이후 총 4번 증시가 고점 대비 30% 이상 하락하였는데, 최저점일을 기준으로 전후 5 거래일(총 11 거래일)의 시가총액 대비 거래대금을 보면 평소 대비 거의 두 배 정도 증가하였다. 다음으로 등락비율(ADR)이 개선된다. 상승 종목 수를 하락 종목 수로 나누는 것인데, 100%를 넘어가면 상승 종목이 더 많다는 뜻이다. 코로나19 당시 한국 증시의 ADR은 거의 40%까지 빠졌다가 230% 이상까지 상승한다. 그리고 장기 이동평균선(200일)은 하락 중이나 단기 이동평균선(30, 100일)은 상승 전환한다.
금융장세의 주인공은 다음과 같다. 먼저 금융주다. 다음으로는 공매도가 많고 소위 빈집인 주식이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섹터가 될지에 대해서 많이 질문하는데, 금융주를 제외하고는 금융장세 때마다 다르다. 이는 이전에 어떤 분야가 주도주였는지,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어느 분야로 재정정책을 집중적으로 집행하는지, 바닥을 찍고 상승할 때 주도하는 수급 주체가 어디인지, 그리고 국가별로 나타나는 산업의 특성이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금융장세는 추후에 전개될 강세장의 주도주가 탄생하는 시기다.
표 1. 침체 시 미국 증시 하락률
고점 | 저점 | 하락률 | |
2020년 | 3394 | 3192 | -35% |
2009년 | 1576 | 667 | -58% |
2002년 | 1553 | 769 | -51% |
1990년 | 370 | 295 | -20% |
1982년 | 141 | 102 | -27% |
1980년 | 118 | 98 | -17% |
1974년 | 120 | 62 | -48% |
1970년 | 108 | 69 | -36% |
1962년 | 73 | 52 | -28% |
1958년 | 50 | 39 | -21% |
1953년 | 27 | 23 | -15% |
총 11회 | 평균 | -32% | |
중간 값 | -28% |
2단계 실적장세(전반)
금융장세 다음은 실적장세다. 둘을 묶어서 강세국면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적장세는 회의론 속에서 출발한다. 아직 경기는 좋지 않은데, 주식은 반등했기에 주변에는 비관론자가 많은 상황이다. 정부가 실시한 각종 정책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경제 여건의 개선세가 나타난다. 생산이 플러스로 전환되고, 재고가 감소한다. GDP가 회복하고 다음 경기 전망이 상향된다. 완화적인 유동성 환경에 경기 개선세도 보이기에 일반적으로 강세국면 중에서 가장 안정되어 있고, 상승 기간도 길다. 보통 2년 정도 지속한다고 본다.
이때 주인공은 소재산업이다. 우라가미 구니오는 구체적으로 섬유, 제지, 화학, 유리, 시멘트, 철강, 비철금속 주식이 주목받는다고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반도체를 비롯한 경기민감주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또한 대량 매매가 쉬운 저가 대형주로 기관투자자의 관심이 몰리는 시기다. 더불어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니 퀄리티가 떨어지는 3류 주식도 기회를 얻게 된다. 실제로 지난 증시 반등 때 실적장세 시기에는 반도체, 화학, 시멘트, 철강 등 경기민감주가 크게 상승했다.
우리 증시가 지닌 특성 때문에 이 시기에는 한국 증시가 크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한국이 경기민감주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경기민감주가 주인공이 되는 실적장세 전반부에는 한국 증시가 글로벌에서 주인공이 되곤 한다. 실제로 코로나19 랠리에서도 한국은 실적장세 전반주에 가장 좋은 모습을 보였다.
3단계 실적장세(후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결정적 요소는 인플레이션이 싹트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낙오자가 처음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초장기 성장주다. 금리가 상승하는 구간에서도 초장기 성장주가 현재처럼 높게 가치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지는 해가 있으면 떠오르는 해도 있는 법이다. 성장주 대비 늘 패배자였던 가치주가 부상하게 된다.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시작되는 실적장세 후반부에는 경기가 최고조를 기록한다. 다만 더 이상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늘어나지 않고, 기업들의 실적 성장은 둔화된다. 이처럼 경기는 뜨겁지만 유동성은 제한적이고, 성장 모멘텀은 꺾여 내려가기 때문에 중소형의 고수익 종목이 인기를 끈다. 히트 상품이 일단 나오기만 하면 이들 기업의 주가는 초강세를 보일 수 있는 구간이다. 흔히 '경기민감주를 고 PER에 사서 저 PER에 팔라'고 하는데, 이 시기가 바로 '저 PER에 파는 시기'가 된다.
실제 당시 우리 증시를 보면 대형 경기민감주보다는 중소형 성장주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SK하이닉스, 현대차, POSCO, 롯데케미컬, 금호석유 등 대형 경기민감주는 1~5월 사이 고점을 기록한 후 주가가 내렸다. 반면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등 이차전지 관련주와 하이브, JYP 등 엔터미디어 관련주, 그리고 F&F, 아프리카 TV, 펄어비스, 위메이드 등 소비 관련주들이 주도주로 등극했다.
우리 증시만 놓고 보면 정부의 조치도 대형주 부진과 개별주 장세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코로나19 이후 전면 중단한 공매도를 마침내 2021년 5월 3일부터 재개하게 되었는데, 대형주만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콘셉트가 같은 종목 군을 선정하고선 대형주를 공매도하고, 공매도가 불가능한 중소형주를 매수하는 전략이 인기를 끌었다. 그렇지 않아도 실적장세 후반부로 넘어갈 시기였는데, 정부의 정책 변화가 여기에 제대로 불을 붙였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연기금의 포트폴리오에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데 한몫했다.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하기 위한 조건
ARK가 추락하던 2021년도 1분기에는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우선 1월에 게임스탑 주가 폭등 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소셜 뉴스 웹사이트인 레딧을 중심으로 펼쳐진 공매도 척결 운동인데, 개인투자자가 공매도 세력에게 한 방 먹인 역사적 사건이다. 또한 3월에는 빌 황의 아르케고스 청산 사태가 벌어진다. 바이두, 텐센트뮤직 등 중국의 테크 주식과 바이콤, 디스커버리 등 미국의 미디어 주식에 높은 레버리지로 투자해 두었는데, 이들이 급락하면서 대규모 반대매매가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필자는 이들 사건이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부 외 부채 문제가 아니었다. 큰 위기는 제대로 측정되지 않는 데에서 나타난다. 잘 알려진 예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주택 관련 파생상품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앞의 세 가지 사례는 너무나 깔끔하게 장부에 남아 있는 거래여서 금융사들과 정부 입장에서는 소위 각이 나오는 경우들이었다. 둘째, 레버리지가 과도하지 않았다. 금융위기 직전에 투자은행들의 자기 자본 대비 총자산은 30~50배에 달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가 금융사들의 과도한 레버리지를 제한하는 각종 장치를 마련한 덕분에 10~20배 수준으로 많이 감소하였다.
만약 위의 두 가지 요인을 충족하는 위기 상황인 것으로 추정될 때에는 추가로 무엇을 보아야 할까? 바로 정부와 중앙은행의 수중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카드가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2021년 1분기로 돌아가 보면 당시 중앙은행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여전히 많았다. 대표적으로 아직 테이퍼링도 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추가로 완화책을 사용해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투자의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정광우 지음
유익성 ★★★★★
재미 ★★★☆☆
추천 ★★★★★